‘리틀 파리’ 감성 간직한 오스트리아 빈 제어비텐피어텔

화려한 구시가지 관광명소도 좋지만, 진정한 오스트리아 빈의 일상은 9구역, 알저그룬트에서 만날 수 있다. 현지인에 따르면, 9구역은 빈에서도 살기 좋은 곳으로 손꼽힌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동네라 많은 이들이 이곳에 살고 싶어 한다. 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지역은 6~9구역이다. 젊은 사람들과 예술, 문화, 연극 등을 좋아하는 가족들에게 인기가 많단다. 좋은 라이프스타일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서 모두가 좋아하는 장소다. 물론 1구역은 엄청 비싸다고 했다.

알저그룬트에서도 ‘제어비텐피어텔’(Servitenviertel)은 빈 전통과 프랑스 감성이 어우러진 감성적인 동네다. 제어비텐피어텔은 알저그룬트 구역 내에 있는 작은 동네나 지역을 말한다. ‘피어텔(Viertel)’은 독일어로 ‘구역’을 뜻하는데 여기선 ‘동네’의 의미로 사용됐다.

비오는 제어비텐피어텔 거리 /사진=권효정 기자

제어비텐피어텔은 프랑스풍 카페와 상점들이 많아 ‘리틀 파리’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현재 비엔나는 23개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1858년 이전에는 1구역만이 도시의 전부였고, 높은 성벽과 넓은 녹지대로 둘러싸여 있었다.

9구역은 과거 성벽 밖 교외로 비엔나 외곽이었지만, 1850년 비엔나에 편입됐다. 현재는 빈 중심부에 가까운 매력적인 구역으로 탈바꿈했다. 1850년 비엔나 시에 편입된 후, 알저그룬트는 독특한 문화와 역사로 여행자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리틀 파리’라는 애칭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프랑스풍 카페들이 즐비한 거리가 꽤나 매력적이다. 보행자 천국인 이 거리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현지인을 통해 알게 된 여행 팁이 있다. 빈을 걸으면서 건물 나이를 알 수 있는 방법이다. 창문을 보면 된다. 창문이 안쪽으로 약간 들어가 있고 안쪽으로 열리면 19세기 후반(1850년 이후)의 건물이다. 반대로 창문이 벽과 같은 선상에 있고 바깥쪽으로 열리는 건물은 17세기나 18세기에 지어진 것이다. 훨씬 오래된 건물이다. 거리를 걸으며 창문을 보는 것만으로도 건물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 빈을 방문할 때는 이런 양식을 관찰하며 나름의 역사를 읽어내는 것도 흥미로웠다.

제어비텐교회(Servitenkirche)

9세기에 지어진 제어비텐교회는 알저그룬트의 랜드마크다. 고딕 양식 외관과 정교한 내부 장식이 눈길을 끈다. 제어비텐교회는 오스트리아 바로크 건축의 역사를 새로 쓴 명소다. 1638년 페르디난트 3세 황제의 허가로 시작된 이 성당은 빈 문화사의 유산이다. 1651년 11월 11일, 첫 삽을 뜬 제어비텐교회는 이탈리아 거장 안드레아 팔라디오 영향을 받은 카를로 마르티노 카를로네의 설계로 지어졌다. 1670년 봉헌된 이 교회는 빈 최초의 타원형 중앙 집중식 건물로, 후대 바로크 교회들의 모델이 됐다.

제어비텐교회(Servitenkirche)

교회 내부는 바로크 예술의 향연장이다. 1723년 제작된 프란츠 카스파르의 삼위일체상과 천사들, 1739년 발타자르 페르디난트 몰이 만든 네 복음사자와 세 가지 신학적 덕목을 표현한 설교단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빈 바로크 건축 시초를 보고 싶다면 이곳을 추천한다. 제어비텐교회는 현재도 수도원 교회이자 일반 신자를 위한 본당 교회로 사용된다. 1917년 화재로 지붕이 무너지는 위기를 겪었지만, 복구 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제어비텐교회는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기억의 열쇠 프로젝트(Schlüssel Gegen Vergiss Memorial)

제어비텐교회를 나와 광장으로 나서면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곳이 있다. 제어비텐가세는 제어비텐피어텔 보행자 전용 구역으로 중심 거리를 말한다. 제어비텐가세는 2차 세계대전 이전 빈의 주요 유대인 거주지 중 하나였다. 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약 20만 명의 유대인이 빈에 살았지만, 현재는 약 1만 명 정도만 남아있다. 대부분은 레오폴트슈타트(2구)에 살고 있다.

비가 오는 날이라 유리 상자 위로 빗방울이 떨어져 있는 모습 / 사진=권효정 기자

레오폴트슈타트가 비엔나의 주요 유대인 지구였지만, 더 부유한 유대인들은 1구와 9구에도 거주했다. 한때 제어비텐가세는 주민과 상점 주인의 대다수가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1938년, 나치의 공습으로 그들은 잔인하게 쫓겨났거나 살해됐다. 오늘날 제어비텐가세를 걷다 보면 ‘기억의 열쇠’ 프로젝트를 만나게 된다. 이곳 주민들은 과거에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 알고 싶어 했고, 많은 조사를 통해 그들의 이름을 알아냈다. 2008년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진 작은 기념물은 거리의 숨겨진 억압된 역사를 생생하게 전한다.

땅에 매립된 유리 상자 안에는 462개 열쇠와 이름표가 놓여있다. 열쇠들은 한때 이곳에 살며 일했던 사람들, 거리에서 쫓겨나 잊혀진 사람들을 상징한다. 동시에 그들의 이름을 되찾고 기억하는 과정도 나타낸다. 평화로운 모습 뒤에 숨겨진 역사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리히텐쉬타인 정원궁전(Gartenpalais Liechtenstein)

빈하면 떠오르는 궁전은 보통 웅장한 쇤브룬 궁전, 아름다운 벨베데레 궁전 등 1구역 거리에 있다. 놓치면 아쉬운 숨겨진 보석 같은 궁전도 있다. 9구역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한 리히텐슈타인 정원 궁전이다. 17세기에 지어진 리히텐쉬타인 정원 궁전은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별장이었다.

리히텐쉬타인 정원궁전(Gartenpalais Liechtenstein)

리히텐슈타인?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고? 맞다. 지금도 유럽에 존재하는 작은 나라, 리히텐슈타인이다. 한때 유럽 최고 부자 가문이었던 그들은 궁전 여러 채를 거느렸다. 이곳은 예술 작품을 보관하는 ‘보물 창고’역할을 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리히텐슈타인 가문 방대한 예술 컬렉션으로 유명한 이 궁전은 2011년부터 일반 공개가 중단됐다. 가이드 투어를 통해서만 내부를 관람할 수 있다.

리히텐쉬타인 정원궁전(Gartenpalais Liechtenstein)

현지인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따로 있다. 궁전 뒤편에 숨겨진 정원이다. 넓은 잔디밭, 울창한 나무, 곳곳에 놓인 조각상들. 평화로운 정원은 ‘비밀의 화원’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정원은 처음에 바로크 양식으로 설계됐다. 좌우대칭이 완벽하고 반듯한 정원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정원은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영국식 스타일로 변모했다. 구불구불한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작은 연못과 아기자기한 다리를 만날 수 있다. 그림 속 풍경처럼 아름다워 빈 시민들에게도 사랑받는 휴식처다.

빈(오스트리아)=권효정 여행+ 기자

권효정 여행+ 기자 hyojeong@tripplus.co.kr